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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본문

나의 서재/review

장미의 이름 - 움베르토 에코

파란건 2015. 9. 28. 11:29

누구나 한 번 이름은 들어봄직한,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 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아서 책 읽는데 두달은 걸린 것 같다. (중간 중간에 다른 책을 읽기도 했다.)


추리소설이지만 그 안에 많은 역사적이고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렇다.





(늘 그렇듯이 열린책들 책은 참 예쁘다 ㅎㅎ)







장미의 이름은 아드소라는 수도사가, 본인이 견습이었을 때 겪었던 사건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미스테리한 일이 일어나는 수도원에 명망이 높던 스승인 월리엄을 따라가서 그 실체가 밝혀지는 7일간을 시간의 순서대로 상세하게 기술 하였다. 이런 형식은 셜록홈즈나 뤼팽에서 주인공을 찬양하면서 진실을 알고 있는 조력자가 사건에 대해 설명해주는 형식과 비슷하였다.  그리고 각 챕터 마다 아래 사진처럼 그 챕터를 요약한 내용이 있다. (이 요약이 책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냥 흥미로운 추리소설이 아니라 종교 계파에 대한 내용이 심도 있게 나왔으며 어쩐일인지 나오는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읽어도 읽어도 잘 익숙해지지 않았다. 수도원이라는 한정적이고 특수한 공간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과,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야할 책에 대한 내용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예전에 영화로 나왔다는데, 영화는 좀 더 이해하기 쉬울 듯 하다. 기회가 되면 영화를 한 번 찾아보고 싶다.



*제목이 왜 장미의 이름인가?

책에 장미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왜 하필 장미의 이름인가? 움베르토 에코 자체도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 후기처럼 써놓은 글에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온전한 설명은 아니고 독자에게 맡긴다 <-이런식의 글이었다. 아무튼 장미의 이름에 대한 제목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었다.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을 찍으면서 처음 깨달았는데, 상권과 하권의 표지가 다르다 ㅎㅎㅎ 두달이나 책을 읽었는데 처음 알았다.




장미의 이름

저자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트 에코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2-04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세기 최대의 지적 추리소설이자,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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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우주라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드러내는 데 명민하시되 (필요하다면) 덮어 두는 데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죽음은 나그네의 휴식, 모든 수고의 끝


진정한 배움이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할 수 있었던 것, 어쩌면 해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는 때로 없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이단 아닌 것 없고 정통 아닌 것 없다. 어느 한 세력이 주장하는 신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 세력이 약속하는 희망인 것이야. 모든 이단은 현실, 즉 소외의 기치와 같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는 한 가지는 이해했다.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어떤 적도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연 현상에 관한 명상 안에다 나 자신을 풀어놓음으로써, 내 생각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 자연의 형상을 바라보고, 그 형상에 의지해서 나 자신을 잊으려 했다.


홍예문 벽에 새겨진 평화의 위대한 약속에 비겨 보면 내 고통이란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던가


가난의 의미는 궁전을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으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땅의 일에 대해 다스릴 권리를 갖느냐 포기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고 그 뒤로도 그랬지만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본 바가 없다.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