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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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review

모스크바의 신사 - 에이모 토올스

루밤 2019. 8. 18. 02:38

 

쓰라는 논문은 쓰지 않고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은 책. 

 

나는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팬이라서 아직도 혹시나 이 컨텐츠가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며 패널들의 인스타를 엿보고 있다. 패널 중 김도인님은 종종 인스타에 책이나 음악을 추천해주시곤 하는데 얼마전에 추천해주신 이 책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모스크바라는 도시에 내가 갖고 있는 환상이 있고 (실제로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행기 안에서 모스크바 위 쪽을 지나갈 때 느꼈던 마음이 생각났다. 

(제목에 끌렸다는 말이다.)

그리고 배경이 호텔이 나오는데, 내가 호텔, 배, 비행기가 배경으로 나오는 소설이나 영화에 약하다..

 

 

책을 받아보니 일단 두께가 700장이 넘어서 조금 놀랐지만.. 읽기 시작해보니 크게 생각할 내용이 없고 이야기의 전개가 매끄럽고 흥미로워서 끝까지 읽는데 3일정도 걸린 듯 하다. 

책장 넘기는 속도가 마치 스티븐 킹의 스릴러 소설이나 제프리 디버의 본 콜렉터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급이었다. 물론 내용은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소소하고 작은 반전들과 30년에 걸친 이야기 안에서 살짝 등장했다가 사라져가는 인물들이 있어 추리소설과 비슷한 재미도 조금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30대 초반에 남은 여생을 어떤 특정 호텔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연금당하는 선고를 받는다. 

이런 특수한 상황속에서도 주인공이 원래 갖고 있던 신분과 재산 그리고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주관있는 성격 덕분에 호텔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태생이 긍정적이던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도 절망하기도 하고 고뇌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의 나이 (30대 초반) 부터 중장년 (60대 중반)까지의 이야기에서 때로는 인생의 기회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기도 하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돌이켜 보면 오히려 행운일 수도 있다는 에피스도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사실 제일 좋아하는 부분은 단추에 대해 했던 비유이다. 

 

 

"이런 식이죠. 이 상자에는 파란 단추들만 담고, 저 상자에는 검은 단추들만 담고, 또 다른 상자에는 빨간 단추들만 담는 거죠. 아빠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여기서도 맺고 저기서도 맺는데, 그 관계들이 서로 구분되도록 하고 싶어 한대요."

"그렇다니? 나는 내가 타인들을 단추처럼 취급하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구나."

 

"우리가 모든 단추를 커다란 유리병 하나에 몽땅 담아놓는다면 세상이 더 좋아질까요? 그런 세상에서는 특정한 색깔의 단추를 집으려고 손을 넣을 때마다 의도와는 달리 손가락 끝이 불가피하게 그 단추를 다른 단추들 밑으로 밀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나중엔 그 단추가 보이지도 않게 될 거예요. 그러면 결국 화가 난 상태에서 모든 단추를 바닥에 쏟아붓겠지. 그러고 나서는 그걸 다시 주워 담느라 한 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하게 될 거예요."

 

 

아마 이야기를 읽으신 분이라면 이 부분이 누가 하는 말이고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배경이 러시아이고 러시아 혁명과 관련된 시대의 흐름이 중간중간 나타난다. ('차를 맛보는 여인'에서도 미국인의 관점? 통계학자의 관점에서 본 러시아 혁명의 문제점들이 나왔었기에 그 부분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런 점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저자가 미국인이어서 그랬는지 결말 부분이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결말 외에 나머지 부분은 읽는 내내 재미가 있었고 더 열심히 살고자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좋은 책이었다.